[설교] 입술의 고백에서 삶의 고백으로 - 막8


마가복음 8:27-38 보기


     인생은 언제 아름다울까요? 인생의 목적이 있을 때 아름답습니다. 사고로 팔다리를 모두 잃은 프랑스 남성이 도버해협 횡단에 성공했습니다. 오리발 모양의 의족을 단 필립 코리종(42)은18일 오전 6시45분 영국 남부 포크스턴을 출발, 약 34㎞의 도버해협을 14시간 이상 헤엄쳐 오후 8시13분 프랑스 북부 캡그리스네즈에 도착했다고 영국 BBC방송 인터넷판이 전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도버해협을 건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바람 상태가 좋았고 심지어 돌고래 세 마리가 그와 함께 나란히 헤엄쳐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크리종은 16년전 지붕에서 TV안테나를 만지던 중 감전사로 팔과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그는 해협을 건너는 사람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자신도 해협을 횡단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크리종은 "나와 내 가족, 불행한 사고로 삶의 의욕을 잃은 모든 사람을 위해 도전했다"면서 "온몸이 만신창이이지만 어느 한 순간도 내가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매일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는 것, 그것이 성도의 목적이 아닐까요? 당신은 어떤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고 있나요? 오늘 말씀 막8:35은 성도의 삶의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성도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과 복음을 위하여 생명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젊은이의 신앙’을 소유하고 있어야합니다.



     젊은이의 신앙은 '투쟁하는 신앙'입니다. 자아와 투쟁하고, 사회와 투쟁하고, 공동체와 투쟁하는 신앙 말입니다. 또 젊은이의 신앙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변화를 사랑하는 신앙입니다. 젊은이의 신앙은 도전하는 신앙입니다.
 
     반대의 모습도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방인의 신앙, 또는 늙은이의 신앙이라고 할까요? 이 이방인의 신앙, 늙은이의 신앙은 가데스 바네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과 같은 부정적인, 자기비하적인 신앙의 모습이 드러나는 신앙을 말합니다. 신앙이라고 말하기도 뭐한 모습입니다. 이들의 모습에는 과저지향적인 모습이 드러납니다. ‘왕년엔..., 내가 언제 땐...’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신앙에 왕년이란 없습니다. 단언하건데 신앙은 바로 지금만을 말하는 것입니다. 늙은이의 신앙은 두려워하는 신앙입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신앙입니다. 복지부동의 보신신앙입니다.

소설가 은희경씨는
‘노인이 단것을 좋아하는 건 쉽게 에너지를 얻기 때문. 달콤함만을 원하다니 나, 너에게 좀 쉽게 가려고 했나봐.’

라고 이야기합니다. 단것만 원하는 신앙. 그것은 늙은이의 신앙입니다. 쉽게 얻으려는 신앙은 이방인의 신앙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크리스천의 삶의 목적을 이루기위해서는 두 번째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인생을 주관하시는,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크게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이 믿음의 눈을 소유하려면 관점의 변화가 있어야합니다.

역시 소설가인 이외수씨의 이야기를 빌어오면

매사를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딴에는 사회적으로 성공을 했다고 자처해도 진정한 성공으로는 평가할 만한 가치를 못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의 성공이란 대개, 실패만도 못한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의 목적을 이루는 관점의 변화를 얻으려면 지식을 통한 시야가 아닌 지혜를 통한 시야가 필요합니다. 지혜를 통한 한 시야의 예를 들어본다면 인간의3요소에는 육, 혼, 영이 있습니다. 육체나 정신(마음)이 건강하다고 범사가 잘되진 않지만,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형통합니다. 인간만이 영적인 것은 창조주의 형상대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이시자, 인격이십니다. 그분과의 교제가 곧 예배입니다. 이 지혜를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떠집니다.


     셋째로 젊은이의 신앙과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생동감 넘치게 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있어야합니다. 인생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사랑입니다. 크리스천의 삶의 목적에도 사랑이 배경이 되어야합니다. 사랑은 내 생명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35절 말씀처럼 자기 목숨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공자는

“남들에게 좋은 것을 안겨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이미 좋은 것을 가진 사람이다.”

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을 하는 것은 이미 가장 좋은 것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핵심이다
사역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핵심이다.
사역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부담 대신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서 있으려는 열망이 내 안을 채워야 한다”

고 내려놓음을 쓴 이용규 선교사는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입술의 고백이 삶의 고백으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드러납니다. 아니 보이기 시작합니다. 

     전 세계에서 목사님들 중 가장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들은 중국 목사님들이라고 합니다. 하루 평균 기도시간이 2시간 40분 정도라고 하네요 한국의 목사님은 평균 1시간 20분 정도고 미국의 목사님들은 평균 40분 정도 기도를 하신다고 합니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한해 평균 9%정도입니다. 한국은 5%정도 미국은 평균 성장률1% 안팎입니다. 기도와 경제 성장률의 비례가 비슷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고백을 이루며 사는 인생은 하나님과 대화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오늘도 입술로만의 고백이 아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고백을 통해 주님께서 원하시는 멋진 인생을 사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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